엄마를 로그아웃 하는 시간

엄마를 로그아웃 하는 시간

제발 자라…

제발 자라…. 자라….





잠자리에 누운 지 꽤 되었는데 첫째가 영 잠이 들지 못합니다. 낮잠에서 깬 시간도 평소랑 비슷하고, 이후에도 열심히 놀았으니 남은 에너지도 없을 텐데 도대체 왜 잠이 들지 못하는지……. 이제 그만 꿈나라 기차에 탑승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의 가슴을 일정한 박자로 토닥토닥 두드렸어요. 그러기를 또 한참, 아이의 뒤척임이 사라진 것 같아 살짝 눈을 떴다가 아이와 딱!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아이는 한쪽 눈을 질끈 감고는 다른 한쪽 눈만 슬그머니 뜬 채로 저를, 아니 제 눈치를 보고 있었어요. (자라고 했더니 웬 윙크냐…….)

‘저도 잠들고 싶겠지, 이 어두운 방 안에서 다들 자는 것 같은데 혼자 잠들지 못하고 있으니 얼마나 괴롭겠어.’

아이를 향해 몸을 돌려 누워 한 팔로 아이의 작은 몸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귓속말을 했어요.

“엄마가 너 잠들 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려줄게. 그러니 편하게 푹 자.”

어둠 속에서 고개를 끄덕이던 아이는 그러고도 한참을 뒤척였지만, 끝내는 편안한 표정으로 곤하게 잠이 들었습니다.




안방 문을 열고 나서자 공기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았어요. 보일러를 틀어놓은 안방에 한 시간이 넘도록 누워있다가 나왔으니 거실의 공기가 조금은 서늘하게 느껴진 게 당연했지요. 식탁에 걸쳐놓은 얇은 카디건을 덧입고 세탁이 끝난 빨래를 건조기에 넣었습니다. 아이들이 잠들기 전 후다닥 돌려놓은 식기세척기는 진작에 설거지를 끝내 놓았고, 아이들의 손길로 정리된 거실과 방은 조금은 어수선했지만 눈을 감기로 했습니다.

따뜻한 물 한 잔과 귤 두 개를 옆에 놓고, 노트북을 펼쳤어요. 지금부터 두어 시간, 엄마라는 아이디는 잠시 로그아웃 합니다. 그리고 이내 ‘나’라는 아이디로 다시 로그인합니다.


엄마를 로그아웃 하는 시간


‘나’에게 주어진
하루 두세 시간,




그 시간 동안 저는 온전히 ‘나’가 됩니다. 물론 잠든 아이들이 잠결에 엄마를 찾으면 잠시 아이들 곁으로 돌아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일을 제외하고는 오직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요. 그때만큼은 누구의 엄마도, 아내도, 한 집안의 살림을 책임지는 주부도 아닌, 본연의 ‘나’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나’로 누리는 밤의 시간 동안 글을 쓰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합니다. 독후감 비슷한 것을 쓰기도 하고, 좋은 문장이나 시를 만나면 필사를 하기도 해요. 물론 엄마가 되고 곧장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엄마가 된 지 올해로 4년이 되었어요. 곧 다섯 살과 세 살이 되는 두 아이를 키우며 어느 순간 돌아보니 제 안에 ‘나’ 자신이 없더군요. 온통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놀리는 일에만 골몰해 있었죠. 아이들 옷이며 책이며 장난감을 사는 데에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으면서, 제 옷 한 벌 사는 일에는 수십 번 주저하게 되었으니까요.

‘이 옷 입고 어디 갈 거야. 첫째 등하원 때 말고는 딱히 외출할 일도 없잖아.’

‘이 립스틱 색깔 너무 예쁘다. 근데 이거 바르고 갈 데가 어디 있어. 집에서 바를 것도 아니고….’

‘이 책 읽어보고 싶던 건데, 읽을 시간이 없겠지?’

‘단감이 나왔네. 참, 우리 애들 단감 안 먹지. 사과나 사야겠다.’

제 것 앞에서는 언제나 망설임이 따랐지만, 아이들 것 앞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 더 나은 것을 찾아 헤매는 수고로움이 따르더군요.




소비에서만이 아니었어요. 일상생활에서도 ‘나’의 자리 대신에 ‘엄마’의 자리만이 저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모든 일에 엄마 손이 필요한 첫째와 젖먹이 둘째를 동시에 돌보는 일은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어요. 샤워는 고사하고 세수도 할 틈도 없는 날들이 이어졌죠. 화장실 한 번 편하게 가는 게 소원이었어요.

엄마 껌딱지이자, 타고나길 예민하게 타고난 첫째는 동생이 태어나고 어린이집에 가면서 부쩍 더 어리광을 부렸어요. 사실 어리광을 부린 게 아니라, 여전히 첫째도 어린 아가였던 거죠. 그런 첫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아 첫째와의 시간에 소홀해지지 않으려 부단한 애를 썼습니다. 그러는 동안 하루가 다르게 자란 둘째는 오빠와 엄마 사이를 질투 하듯 점점 더 제 품을 파고들었습니다. 제 몸은 하난데, 저를 강렬하게 원하는 아이는 둘이었어요. (셋, 넷은 어찌 키우시는지…….) 종일 이쪽 팔과 저쪽 팔에 매달리는 둘을 끌어안고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둘째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면서는 그나마 좀 나았지만, 그렇다 한들 아이들이 잠든 시간이 저의 시간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밀린 집안일은 산더미 같았고 그걸 다 하고 겨우 자리에 앉을라 치면 열두 시가 훌쩍 넘곤 했어요. 그냥 자기엔 하루가 너무 아쉬워 맥주 한 캔을 따는 날이 잦았습니다. 불 꺼진 거실에서 넷플렉스를 뒤적이며 밤의 시간을 보냈어요. 어찌 된 일인지, 그런 날은 아이들이 밤새 뒤척였고, 이른 아침에 눈을 떴습니다. 얼마 마시지도 않은 술이 숙취를 불러오는 아침을 맞았고 여러 날의 피로가 누적된 몸은 제 마음 같지 않았죠.





둘째가 돌이 될 때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문득문득 알 수 없는 무기력함과 두려움이 엄습했거든요. 아이들의 사소한 잘못에도 날이 섰고, 남편의 일상적인 행동에도 화가 났어요. 가끔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아이들과 남편이 하하호호 웃으며 놀고 있는 것을 보면, 빈정이 상하기까지 했어요.

‘하루 종일 붙어 있어 봐. 그렇게 하하 호호 웃을 수만 있나. 아무도 모르지. 내가 이렇게 낡아가는 건….’

육아우울증이었던 걸까요. 내가 낡아간다는 느낌이 든 순간, 아찔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그걸 알 수 없다는 생각에 멈칫했습니다.

‘그럼 누가 알아주지? 내가 이렇게 하루하루 낡아가는 걸?’



그날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내가 나를 너무 방치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아이들과 남편, 가정을 위해서 보낸 시간이 결코 헛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정말 행복한 순간도 많았으니까요. 그러나 그 시간 동안 ‘나’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어요. 내가 무엇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는지, 무엇을 하며 행복을 느끼던 사람이었는지 잘 기억나질 않았습니다.

하루 중 혹은 한 주 중, 그것도 아니면 한 달 중 오직 ‘나’를 위해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고민했습니다.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 잠을 줄여가며 매달리던 집안일에서 마음을 내려놓으면 하루 중 두 시간 정도는 내 시간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아이들도 조금 자랐으니 한 달에 한두 번쯤은 남편에게 아이 둘을 맡기고 외출을 감행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책을 곁에 두는 삶



인터넷을 뒤져 취미 활동을 하는 곳을 찾아보았습니다. 집안에서 할 수 있으면서, 자유롭게 할 수도 있고, 많은 돈이 들지 않으며,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다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독서모임을 찾았습니다. 책 읽는 건 큰돈이 들지 않지만, 충분히 나를 성장시킬 수 있고, 한 달에 한 번쯤의 외출은 부담이 없을 듯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독서 모임이 저에게 ‘책을 곁에 두는 삶’을 선물했고, 읽기는 쓰기에 대한 욕구를 함께 불러일으켰습니다.

꾸준히 ‘나’를 위한 시간을 찾아 누리면서 저의 일상은 아주 많이 달라졌습니다. 아이들에게 날을 세우는 횟수도 현저히 줄어들었고,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놀고 있는 틈에 밀린 집안일을 후다닥 하고는 밤의 시간을 확보하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아이들과 함께 집안을 정리하는 습관이 생겼고, 그 결과가 아무리 어설프고 내 마음에 딱 들지 않는다 해도 더 이상 눈길 두지 않을 담대함도 생겼어요. 빨래는 틈날 때 조금씩 개었고, 그게 안 되면 아이들과 놀이하듯 함께 갰습니다. 물론 결과는 처참했지만,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논다는 생각에 즐거워했고 그거면 되었다 생각했습니다. 반찬은 사다 먹기로 했어요. 요리 솜씨가 없는 저는 한 끼를 준비하는 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거든요. 그러니 식사를 준비할 시간 동안 차라리 아이들과 더 많이 놀아주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깨어있는 동안은 오직 엄마로 힘껏 에너지를 쓰고, 그러는 사이사이 ‘나’의 시간을 준비하며 설렜습니다. 아이들이 잠드는 순간, 엄마라는 아이디는 로그아웃, ‘나’라는 아이디를 로그인하는 것은 묘한 쾌감을 주었어요. 식탁에 앉아 좋아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일기를 쓰는 시간 동안 저는 참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 책 읽기를 통해 제가 알지 못하던 세계를 알게 되었고, 글쓰기를 통해 제 안에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거든요.


세상 모든 엄마는
위대합니다.


사실 엄마들은 ‘엄마’로만 살기에도 벅찹니다. 매일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며 끝나지 않는 집안일, 내 편인 듯 내 편 아닌 남편까지, 속 뒤집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너무도 잘 압니다. 그래서 더더욱,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나’의 시간을 찾아냈으면 좋겠습니다. 세상 모든 엄마가 아이들이 다 자라 저만의 날개를 달고 엄마의 품을 벗어날 때, ‘그동안 난 뭘 한 걸까?’ 후회하기보다 ‘이제 나도 내 날개를 달고 날아보마!’ 하며 멋지게 비상하면 좋겠습니다.




그럼 이제 잠시라도, 엄마라는 아이디는 로그아웃, ‘나’라는 아이디는 로그인해 볼까요?










엄마를 로그아웃 하는 시간 by 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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