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는 그저 사랑이라는 말

둘째는 그저 사랑이라는 말

둘째는 그저 사랑이라는 말

첫째를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첫째와 나의 안부 다음으로 묻는 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둘째는 낳을 거야? 언제 낳을 거야?”였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질문이다. 이제 겨우 첫 아이를 출산한 것이 채 일 년쯤 되었을 때였는데 둘째라니! 그런데 막상 그때는 나 역시도 그 질문을 이상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나에게도 여동생이 있고, 주변에 친한 친구들 대부분이 형제나 자매가 있었다. 외동인 친구를 찾는 게 더 어려웠다. 덕분에 ‘아이는 둘은 있어야 한다’는 말을 마치 주입식 교육처럼 들으며 자랐다. 그러니 나도 둘째를 낳는다는 사실보다는 ‘언제 낳을 것인가’에 대해서만 고민했다.


첫째를 임신했을 때 입덧이 무척이나 심했다. 20주까지 물만 먹어도 토하는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토덧’을 했다. 하다 하다 피를 토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너무 못 먹어서였는지 저혈당으로 쓰러져 구급차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렇게 파란만장한 첫 임신을 겪고도 둘째를 낳고 싶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두 아이’에 집착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살면서 들어온 대로 ‘둘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첫째가 15개월이 되었을 때 둘째를 임신했다. 요즘처럼 임신과 출산이 어려운 시기에, 기다리지 않고 찾아와준 둘째가 한없이 고마웠다. 온갖 태교로 무장했던 첫째 때와는 달리 둘째에게는 특별한 태교 한 번 할 수가 없었다. 두 돌을 앞둔 첫째는 첫째대로 엄마 손길이 많이 필요했다. 종일 첫째와 놀다 보면 둘째가 뱃속에 있다는 사실조차 깜박 잊을 만큼 둘째에게는 마음을 쏟지 못했다.

첫째는 첫째대로, 뱃속 둘째는 둘째대로, 나는 나대로 짠하게 느껴졌다. 그래도 도리가 없었다. 모두 내가 한 선택이었으니까. 다행히도 둘째는 하나 신경 쓸 것 없이 무럭무럭 자라주었다. 그러다 덜컥, 32주에 조기진통이 왔다. 아마 배가 불러오는데도 무리하게 첫째와 몸으로 놀아주었던 것이 화근이 되었던 모양이었다. 그때부터 첫째는 나와의 분리를 경험해야 했다. 친정엄마와 남편은 어떻게든 첫째를 데리고 시간을 보내려고 했고, 그럴수록 아이는 더욱 엄마 껌딱지가 되었다.


어찌어찌 예정일을 채우고 둘째를 출산했다. 나이를 더 먹어서인지, 체력이 떨어져서인지 진통 시간은 첫째 때보다 현저히 줄었는데도 몸의 회복은 무척이나 더뎠다. 조리원에 있는 동안 충분히 회복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가서 도무지 두 아이를 돌볼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의무감으로 먹고 자고 마사지를 받으며 몸을 다독였다. 몸이 너무 힘이 드니 도리어 마음은 힘들 틈조차 없었다.

둘째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 첫날, 첫째는 거의 2주만에 만나는 엄마를 보자마자 팔짝팔짝 뛰며 내게 매달려왔다. 그제야 정말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실감 났다. 첫째가 어느 정도는 의사소통이 되던 때였고, 집 근처에 딱 하나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에 입소가 확정되었던 때라  둘 키우는 게 뭐 그리 힘들까 싶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이었다. 둘째는 5개월까지 모유를 먹었는데, 그래서인지 일찌감치 엄마인 나를 알아보고 나만 찾았다. 둘째가 그럴수록 첫째 역시 나에 대한 집착이 커졌다.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둘째를 슬링으로 안은 채, 질투심에 사로잡힌 첫째와 지치지 않고 놀아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출산으로 늘어난 관절들이 모두 뚝뚝 끊어지는 것 같았다. 두 아이를 동시에 안고 거실을 활보해야 하는 시간이 길었다. 혼이 빠진다는 말을 실감하던 날들이었다. 생각해보면 첫째에게도 큰 시련이었을 것이다. 자기와 딱 붙어서 하루 종일도 같이 놀던 엄마가, 동생을 끌어안고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잠을 재우고 있으니 얼마나 충격을 받았을까. 그 마음에 생채기를 내지 않기 위해 애쓰다 보니 내 몸은 성할 날이 없었다. 둘째를 안은 채로 놀이터에서 서너 시간을 보내는 것은 여사였다. 둘째가 통잠을 자기 시작한 뒤로는 둘째를 안방에서 재운 뒤, 옆방으로 건너가 첫째와 잠을 잤다.(둘째는 아빠랑 잤다.) 그러다 둘째가 울면서 엄마를 찾으면 새벽에도 깨서 둘째를 다독인 뒤 다시 첫째 곁으로 갔다.


무슨 정신으로 그 시간을 보냈는지 지금 생각해도 까마득하다. 다들 둘은 키운다던데, 둘째는 낳아 놓으면 그냥 자란다 던데, 둘째는 그저 사랑이라 던데 나에게는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물론 방긋거리며 웃는 둘째의 모습이나, 오랜만에 맞는 젖 냄새는 그것만으로도 가슴 뭉클한 행복을 주었다. 첫째가 둘째를 껴안아 주거나 젖병을 물리는 모습을 보면 그것만으로도 눈물이 툭 터질 만큼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그 순간은 너무도 짧고 내가 짊어질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졌다.

곧 둘째가 두 돌이 된다. 이제야 두 아이를 키우는 사이에 조금씩 틈이 보인다. 말을 제법 하는 둘째가 첫째와 함께 꽁냥거리며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래, 정말 힘들었지만 그때 둘째 낳기를 참 잘했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둘째가 애교를 부리며 목덜미를 끌어안을 때면, ‘이 아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을까’ 싶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둘째는 그저 사랑’이라는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할 수 있다.

다만 조금 더 마음의 여유가 있었을 때, 둘째를 만났다면 어땠을까 가끔 상상을 해본다. 무너지는 몸과 마음을 겨우 부여잡은 채,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두 아이를 끌어안고 서 있던 지난날의 나를 본다. 내 다리에 매달려 “엄마, 엄마” 부르짖는 첫째의 안쓰러운 모습과 내 팔에 안겨 있지만, 내 시선을 받는 시간은 너무도 짧았을 작디작은 둘째의 모습도 본다. 뭐가 그렇게도 급했고 당연했기에 그 힘든 시기에 굳이 욕심을 냈을까. 조금 더 많이 사랑해주고 더 많이 안아줄 수 있을 때 이토록 사랑스러운 둘째를 만났더라면, 모두가 조금은 덜 힘들지 않았을까, 이미 지나간 시간을 곱씹어 본다.


둘째는 사랑이라는 말, 결론적으로는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걸 충분히 느끼고 만끽하기까지는 엄마의 몸과 마음에 여유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사랑이라는 녀석도 마음의 빈자리가 있어야 뿌리를 내릴 수 있으니까.



by 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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