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도 치마를 입을 수 있어

남자도 치마를 입을 수 있어

“엄마, 나는 이거!”

“엄마, 엄마. 이거. 이거!”

스케치북을 사러 문구점에 갔다. 어김없이 사랑이는 엘사와 안나 그림이 그려져 있는 분홍색 스케치북을, 봄이는 울라프가 그려져 있는 파란색 스케치북을 골랐다. 정말 확고한 취향이었다.

“그래, 이렇게 사자!”

첫째는 아들이지만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 분홍이다. 둘째는 딸이지만 제일 좋아하는 색깔이 파랑이다. 어느 날부터 그랬다. 작은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첫째는 분홍색을 골랐고 둘째는 파란색을 골랐다. 둘의 취향은 확고한데, 선물로 들어오는 것들은 대부분 반대 색깔이어서 아이들은 늘 불만이었다. 선물꾸러미를 풀어 색깔을 확인할 때마다 사랑이와 봄이는 서로의 것을 바꿔서 가질 정도였다. 그런 두 아이를 보며 ‘그래, 이렇게 남녀 경계 없이 너희들 좋아하는 대로 고르고 입으며 사는 거야.’라고 생각한 터였다. 그런데 내 젠더의식은 딱 거기까지였다.

지난 명절에 키가 부쩍 자란 두 아이를 위해 한복을 새로 샀다. 첫째는 분홍을 좋아하니까 연분홍 남자아이 한복을, 둘째는 파랑을 좋아하니까 연파랑 여자아이 한복을 샀다. 그런데 문제는 한복이 배송된 이후에 발생했다. 첫째가 둘째의 치마 한복을 제가 입겠다고 나선 것이었다. 하늘거리는 치마 한복이 제 눈에 예뻐 보였던 모양이었다.

“이건 봄이 거잖아. 이게 네 거야.”

“아니야, 이거 입고 싶어!”

“왜 이게 입고 싶은데?”

“예뻐. 예뻐.”

“사랑아, 이건 여자 거고, 이게 남자 거야. 너는 남자니까 바지 한복을 입는 거야.”

“아니야, 나도 여자 할 거야. 이거 입을 거야.”

“안 돼.”

“왜 나는 치마 입으면 안 돼?”

아직 남자와 여자라는 성별 구분이 정확히 인지되지 않는 아이에게 이 옷은 남자 거고, 이 옷은 여자 거라는 말이 통할 리 없었다. 왜 남자는 치마를 입으면 안 되냐는 질문에는 더더욱 답할 말이 없었다. 사랑이와 실랑이를 하는 사이 봄이가 조용해서 돌아보니, 제 오빠의 한복 바지를 껴입느라 낑낑대고 있었다. 설득이라기엔 윽박에 가까운 말을 쏟아내며 결국은 각자의 한복을 입혀서 사이즈를 보았다. 입고 싶은 것을 입지 못한 두 아이는 완전히 비협조적이었고, 나는 혼이 다 빠지는 기분이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누웠는데 그 한복 사건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얼마 전에 쇼핑을 나갔을 때 보석이 잔뜩 박힌 예쁜 구두를 사달라고 조르는 사랑이에게 “저건 여자 애들 거야.”라고 말한 사건까지 더해져서 머리가 복잡했다.

‘한복이 전통의상이라 그랬을까? 만약 그냥 평소에 입는 옷이었다면 어땠을까? 사랑이가 치마를 입고 어린이집에 간다고 했다면 나는 입혀주었을까? 사랑이가 치마를 입으면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보석 박힌 구두는 여자아이들 것이라고 단정 지었을까?’

여러 생각이 얽히고설켜 복잡했다. 그러다 ‘사랑이가 그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을까’라는 생각에 가닿았을 때 아찔해졌다.

‘사랑이는 남자와 여자의 구분을 배웠겠구나.’

아이를 키우며 제일 경계했던 지점이었다. 스스로 생각이 여물어지기 전에 ‘구분’을 배우는 것. 차이를 인식하는 것을 넘어 차별을 익히는 것. 부끄러웠다. 내 안에 이미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젠더의식이 버젓이 존재하는 데도, 여태껏 나는 좀 다르다고 생각해온 것이 무척이나 부끄러웠다.

다음 날, 아이들의 한복을 다시 꺼내놓고 입고 싶은 대로 입어보자고 했다. 역시나 사랑이는 치마 한복을, 봄이는 바지 한복을 골랐다. 신기할 지경이었다. 저희들이 입고 싶어 하는 대로 입혀주었다. 사랑이는 어깨에 거는 치마의 끈이 짧아서 겨드랑이가 아파 보였고, 봄이는 바지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 몇 번이나 접어야 했는데도 둘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깔깔깔 신이 났다. 그렇게 한복을 바꿔입고 거실매트 위를 뛰는 것도 잠시, 저희들 몸에 맞지 않는 옷이 불편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아이 모두 옷을 벗겨달라며 내게로 왔다. 옷을 벗으며 사랑이가 말했다.

“엄마, 나도 다음에 치마 사줘.”

“……”

“엄마, 꼭 치마 사줘! 나한테 맞는 거, 안 아픈 거!”

“그래, 그럼 다음에 가서 사랑이가 직접 골라보자.”

쉽게 그러마 답하지 못하고 한 번의 뜸을 들였다. 치마를 입은 아들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낯설었다. 하지만 ‘안될 건 뭐야?’ 싶은 생각이 스쳤다. 그러마 답해주고는 아이와 눈을 맞추고 웃었다.

두 아이의 한복을 차례로 개며 생각했다. 아이들이 자라는 세상은 조금 더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고. 남자 옷, 여자 옷, 남자의 일, 여자의 일, 남자의 문화, 여자의 문화 등 성별로 양분되어 서로의 영역에 높은 울타리를 치는 세상은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경계를 허물고 자유롭게 날아오를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고.

얼마 전 인스타를 보다가 배우 봉태규 님의 글을 보았다. 봉태규 님은 치마를 입고 시사회에 참석한 자신의 사진 기사에 ‘선을 넘은 패션’이라는 제목이 달린 것을 보고 자기 sns에 글을 남겼다.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그리 길지 않은 글이었는데, 읽는 내내 가슴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울림이 있었다.

– 어떤 경계가 사라진다는 건 개인에게 놀라울 만큼의 자극을 주고 새로운 우주가 펼쳐지더라구요.…… 치마를 입든 입지 않든 그것을 선택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아이에게 중요한 것들을 알려주는 게 되니깐요.

“남자도 치마 입을 수 있어. 심지어 아주 멋지단다.” (봉태규 님의 글 中-)

전과 다른, 새로운 우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자극이 필요하고, 자극을 느끼기 위해서는 스스로 경계를 허물 수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에 격한 공감을 보낸다. 더불어 스스로의 경계에 갇혀, 경계 없이 날아오르는 아이들의 날개를 꺾는 일이 없도록 좀 더 유연한 엄마가 되고 싶다는 소망도 품어본다.

남자도 치마를 입을 수 있어 by 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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