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햇살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유난히 두 아이가 짜증스러운 날이 있다.

내가 느끼기엔 너무나 사소한 이유로 도무지 진정되지 않을 만큼 심한 짜증을 부릴 때면, 나도 자꾸만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엄마, 블록이 안 꽂아져!!”

“엄마, 내 이불 갖다 줘!!”

“엄마, 엄마, 엄마!!”

무슨 놀이를 하든 간에 짜증으로 귀결되는 두 아이와 종일 씨름을 하다 보면 안 그래야지 하다가도 불쑥불쑥 큰 소리가 난다. 제발 엄마 좀 그만 부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기도 한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했어! 자꾸 울고 짜증 부리면 엄마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

솔직히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마음은 아이의 감정을 더 큰 힘으로 억누르고 싶은 마음이다. 내 목소리에, 내 화에 아이의 화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딘가로 숨어들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문제는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것이지만.

내 목소리가 커지거나 얼굴빛이 붉으락푸르락 변할 때면, 예외 없이 아이들은 더 큰 소리를 질렀고, 악을 썼다. 애초에 속상했던 상황에다가 자신의 감정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까지 겹쳐 아이는 더 크게 울고 떼를 썼다. 그걸 모르는 바가 아닌데도 막상 그 상황이 되면 어른인 나부터도 감정 조절이 안 된다.


그런 때, 나는 자주 ‘해와 바람의 나그네 외투 벗기기’라는 이야기를 떠올린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바람은 해에게 자기가 더 힘이 세다고 자랑을 하고, 해는 바람에게 힘보다 지혜가 더 중요하다고 맞선다. 옥신각신 다투던 둘은 길을 지나가는 나그네를 보고는 내기를 하기로 한다. 나그네의 외투를 누가 먼저 벗기는가 하는 내기였다. 바람은 자신의 힘을 믿고 있는 힘껏 나그네의 외투를 날려보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나그네는 옷깃을 단단히 여민다. 해가 나서서 따사로운 햇살을 내리쬐자, 나그네는 이내 외투를 벗는다. 결국 바람과 해의 내기에는 해가 승리한다.

아이와 감정 다툼을 하게 될 때면 ‘바람은 결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길 수 없다’는 메시지를 애써 곱씹는다. 내가 아무리 무서운 표정으로 큰소리를 질러도, 아이의 감정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내가 따스한 햇살로 아이를 품을 때, 비로소 아이의 마음도 가라앉을 것이다. 가만히 눈을 감고 해와 바람의 이야기를 떠올리다가, 내가 햇살이 될 수 있을 때야 눈을 뜨고 아이들을 마주한다.


며칠 전에도 둘째가 아침부터 떼를 쓰며 짜증을 부리는데 도무지 받아줄 마음이 먹히질 않았다. 짜증도 정도껏이어야 하는데, 그 날은 정도를 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먹고 싶다고 해서 집에 있는 것들을 이것저것 꺼내 주었더니 다 싫다고 치워버리고는 울고, 장난감을 갖고 놀다가도 마음대로 안 된다고 울었다. 블록 놀이를 하다가 블록이 무너졌다고 짜증을 내고, 물놀이를 하다가 제가 필요한 물놀이 용품이 사라졌다며 소리를 질렀다. 둘째 혼자만 그랬어도 어떻게든 받아주고 달래주며 하루를 버텼을 텐데, 저녁이 되자 첫째까지 짜증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둘이서 사사건건 시비가 붙어 싸우기까지 하니, 나도 더 이상은 참아지지가 않았다.

안아주겠다고 해도 싫다, 다른 놀이를 제안해도 싫다, 마치 ‘싫어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말끝마다 “싫어, 싫다고!”라며 소지를 지르는 아이들에게 대꾸할 말이 없었다. 차곡차곡 쌓인 감정은 끝내 폭발하고야 말았다.

“오늘따라 왜 이러는 거야. 대체. 아침부터 지금까지 내내 짜증만 부리잖아. 엄마도 이제 더 이상은 못 참겠어!! 자꾸 이러면 엄마는 너희랑 놀 수 없어!! 엄마한테 말 걸지 마. 이제!”

차라리 그때그때 마음을 표현하는 편이 나았다.

꾹꾹 눌러 담은 감정은 결국 한 번에 터졌고, 끝내 ‘너희와 놀지 않겠다’는 유치한 말을 뱉고 말았다. 씩씩거리며 혼자 식탁에 앉아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펼쳤다. 두 아이는 각자의 목소리대로 악을 쓰며 울고 있었다. 도무지 내 마음 하나도 추슬러지지 않아 한참 동안 두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도 꼼짝하지 않고 버텼다.

어차피 아이들이 이기는 싸움이었다. 나는 어른이고, 아이는 아이일 뿐이었다. 아이들은 제 감정만 보지만 나는 나와 아이들의 감정, 상황까지 고루 봐야 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해와 바람의 내기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주문처럼 계속 외었다. 바람이 아닌 해가 되어야 한다고. 그러는 사이에도 아이들은 여전히 울고 있었다. 귀를 울리는 울음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내 마음에 바람이 잦아들었을 때, 식탁 의자를 드르륵 밀고 일어서 아이들에게로 갔다.

“얘들아, 이리 와. 엄마가 안아줄게.”

아까는 그렇게 안아준다고 해도 안기지 않던 아이들이 우는 동안 화난 엄마의 눈치까지 보느라 힘들었던지 이내 쓰러지듯 안겨 왔다. 저희도 나도 조금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여기며 둘을 한 품에 안았다.

“얘들아, 너희가 이렇게 자꾸 떼를 쓰고 소리를 지르면 엄마도 힘들어. 그래도 아까처럼 너희한테 같이 소리 지르고 화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엄마가 미안해.”

두 아이의 울음소리는 이제 악을 쓰던 소리에서 설움이 뚝뚝 묻어나는 소리로 바뀌었다.

“엄마, 나도 미안해요. 자꾸 소리 질러서.”

“엄마, 미안해요.”

아이들의 미안하다는 말에, 잠시라도 바람이 되었던 내가 미웠다. 더 따스한 햇살로 품어주지 못했던 나의 미숙함이 부끄러웠다.

“그래, 우리 서로가 미안하다고 했으니, 이제 기분 좋게 놀자!”

“응! 좋아!”

아이들은 발개진 얼굴에 퉁퉁 부은 눈을 비비며, 나를 끌어안았다. 종일 찬바람 불던 거실에 그제야 햇살이 드리웠다.

해와 바람의 내기를 자주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하지 않아도 언제나 따스한 햇살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감정을 힘으로, 목소리로 누르는 바람 같은 엄마가 아닌, 언제나 포근하고 따스한 품을 가진 햇살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햇살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 by 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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