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말은 아이의 마음에 그림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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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말은 아이의 마음에 그림을 그린다

엄마의 말은 아이의 마음에 그림을 그린다

나는 기억력이 매우 좋은 편이다.

모든 것을 잘 기억하는 건 아닌데 사람의 말을 유독 잘 기억한다. 어느 정도냐면 주위 사람들이 간혹 내 기억력이 무서워서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하겠다고 앓는 소릴 하기도 한다. 기억해 둔 말들은 평소엔 무의식의 창고에 쌓여 있다가 무언가 자극이나 계기가 생기면 툭 튀어나오곤 한다. 

나의 아이가 태어나 자라기 시작하면서 내가 태어나 자라면서 먹고 자란 말들도 하나씩 나의 의식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부지불식간에 떠오른 그 말들을 곱씹을 수록 명확해지는 것이 있었다. 그 말들이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 주었다는 것.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던 듯하다. 할아버지 집에 가면 세면대가 아닌 세숫대야가 있었다. 세숫대야에서 세수를 할 때마다 엄마는 매번 답답해했다. “이걸 왜 못해? 이렇게 좀 더 앉아서, 아니 엉덩이를 좀 들고! 얼굴은 숙이라고!” 엄마가 생각하는 세수하기 편한 자세가 있었는데 내가 그 자세를 하지 못해서 옷이 많이 젖거나 했는 모양이다. 도서관 앞에서 사진을 찍던 날도 비슷했다.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이었는데 엄마가 사진을 찍을 때 만이라도 눈을 똑바로 뜨고 웃으라고 말했다. 웃으려고 노력했지만 눈은 뜰 수가 없었다. “아니, 왜 눈을 못 떠? 그 잠깐 눈 뜨는 그게 왜 안 돼?”

엄마는 본인을 기준으로 나의 능력을 평가했던 걸까? 세숫대야 놓고 쭈그리고 앉아 세수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고, 햇볕에 눈을 조금이라도 뜨고 있으면 눈물이 줄줄 날 정도로 눈이 약했던 것인데 그 당시엔 엄마의 “왜 못하느냐?”는 질문에 어떠한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어린 나로서는 그 말이 “모두가 당연히 하는 건데 너만 못해.”로 들렸기 때문이다. 모두가 당연히 하는 건데 내가 못하는 것이라면 나는 참 못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입시와 취업 관문을 뚫으면서 삶의 중요한 성취를 이뤄낸 뒤에도 나는 늘 내가 못난 사람이라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고작 세수를 못하고 사진 찍을 때 눈을 못 떠서 들었던 그 작은 비난들이 ‘나는 그런것도 못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만든 것이다. 그러한 인식은 늘 나를 ‘을’의 위치에 데려다 놓았다. 주위 사람들이나 회사가 못난 나를 인내해 주고 있다고 생각했고, 언제든지 배척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전전긍긍하며 내 목소리는 잘 내지 못했다. 

“왜 못하느냐”는 질문보다 더 내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 엄마의 말이 있다. 

그 말을 들은 첫 기억은 아빠의 차 안에서였다. 신경질적으로 조수석 문을 닫고 탄 엄마는 씩씩대며 한참을 나에게 뭐라고 했다. 차에 타기 직전 엄마는 아래층에 사는 엄마로부터 내가 그 집 꼬마에게 샌들을 벗어 코에다 갖다대는 장난을 쳤다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그 당시 동네 친구들은 모두 그러고 놀았고 그날 계단을 내려오다 그 아이를 만나 그 장난을 쳤던 것 뿐인데… 엄마는 한참 동안 나에게 왜 친구들이랑 안 놀고 몇 살 어린 동생한테 그런 장난을 치냐고 뭐라고 했다.” 아빠는 듣다 못해 엄마에게 “동생이랑 그러고 놀 수도 있지 그게 뭐 대수야?”라며 내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사람들이 쟬 어떻게 보겠어! 친구들이랑 안 놀고 지보다 어린 애랑 논다고 이상하게 볼 거 아냐!”

짐작컨데, 엄마는 그저 내가 좀 더 또래 친구와 잘 어울리길 바랬던 것이리라. 그 후로도 내가 조금 튀는 행동이나 말을 할 때마다 “사람들이 널 어떻게 생각하겠어?”라는 말은 자주 등장했다. 그 말은 나에게 이런 메시지를 주었다. 

“사람들은 늘 널 지켜보고 있고 비난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단다. 흠 잡 히면 안 돼.”

엄마의 말은 아이의 마음에 그림을 그린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길을 걸을 때, 밥을 먹을 때, 수업을 들을 때, 도서관에 앉아 시험 공부를 할 때, 어디엔가 걸어들어갈 때… 숨을 쉬는 모든 순간 늘 남을 의식하고 있었다. 남들이 내 걸음걸이를 어떻게 볼 지, 시험 공부를 하는 내 모습을 어떻게 볼 지, 내가 음식을 씹고 삼키는 소리가 좀 크진 않은 지, 늘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 지 생각하며 행동하다 보니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의 행동은 부자연스러웠고 정작 생각하고 집중해야 할 것에는 집중할 수가 없었다. 수업 시간에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것 보다 수업을 듣고 있는 내 모습을 지켜볼 타인이 더 신경쓰였다면 상상이 되는가? 사실 사람들은 나에게 별 관심이 없는데 말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니 아이의 뇌가 스펀지 같다는 말을 체감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플래쉬 카드 100여장을 며칠만에 외워버리기도 하고 내가 쓰는 말투를 고대로 흉내내어 쓰기도 하는 걸 보면 정말 습득력이 뛰어나다는 걸 느낀다. 그걸 아는 엄마들은 배움의 효용이 좋은 이 때에 뭐라도 더 넣어주려고 노력을 하기도 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스펀지 같은 아이의 뇌는 좋은 것만 선별적으로 흡수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 엄마가 그러했듯 별 뜻 없이 내뱉은 사소한 비난의 말도 아이는 기억해 둘 것이다.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말을 많이 들은 아이가 긍정적인 자아상을 가지고 건강하고 즐겁게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들은 아이는 부정적인 자아상을 지우고 감추느라 세상을 즐기지 못할 것이다. 세상이 그럭저럭 즐거운 곳이라고 이야기 들은 아이들이 호의와 호기심으로 세상을 탐구하며 진취적인 삶을 사는 동안 세상은 냉정한 곳이라고 이야기 들은 아이들은 배척당하는 것에 늘 전전긍긍하며 주눅들어 살아갈 것이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아주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된 후까지 나에게 상처를 주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준 말들은 모두 엄마에게서 나온 말들이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어쩌면 엄마라는 존재가 나에게 너무 큰 의미여서, 그 존재로부터 받은 상처의 충격이 더 크고 오래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말은 아이의 마음에 그림을 그린다

그 절대적인 의미를 가진 엄마가 된 당신은 어떤 말로 아이의 마음속에 아이의 초상과 세상의 풍경을 그려주고 있는가?

엄마의 말은 아이의 마음에 그림을 그린다 by 하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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