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기다리는 일,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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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기다리는 일,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오랜만에 두 아이와 놀이터에 다녀왔다. 날씨가 무척이나 좋았고, 공기도 최악은 면해서 큰맘 먹고 나선 길이었다. 온도가 꽤 높아지긴 했지만, 변덕스러운 겨울 날씨에 혹시 몰라 외투를 두 종류나 챙겨서 나갔다. 아이들도 옷 입고 마스크 쓰는 게 귀찮은지 안 나가겠다고 버티더니 막상 현관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신이 났다.

“엄마, 나 킥보드 탈래!!”

“나도, 내 킥보드 어디 있지?”

두 아이는 자기 킥보드를 찾아 발을 얹었다. 발을 구르는 모습에서 아이들의 설렘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나 역시도 두 아이를 옷 입혀 데리고 나오는 게 마냥 편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이 신나게 달리는 모습을 보면 그게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집 근처에 있는 작은 공원에 가기로 했다. 어른 걸음으로는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 곳이지만 아이들과 함께라면 말이 달랐다. 횡단보도도 두 개나 건너야 해서 신랑 없이 혼자서는 잘 데리고 가지 않았는데, 오랜만의 바깥나들이니까 가보자 싶었다.

첫째와 둘째가 나란히 킥보드를 타고 가는데, 쌩쌩 잘 달리는 첫째와 달리 둘째는 오랜만에 킥보드를 타서 그런지 자꾸 엉뚱한 방향으로 가거나, 잘 가다가도 퍽 하고 앞으로 넘어지곤 했다. 아이는 괜찮다고 했지만 엄마인 내 입장에서는 괜찮지 않았다.

“엄마가 도와줄게.”

“엄마가 킥보드 끌어줄까?”

몇 번이나 물었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

“아니야, 나 혼자!”

“혼자 할 거야. 엄마 손 놔.”

“내가 할게!”

둘째의 단호한 말투와 결연한 표정에 어쩔 수 없이 킥보드에서 손을 떼야했다. 하지만 이내 휘청거리는 킥보드를 잡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슬쩍 손만 올렸을 뿐인데도 둘째는 하지 말라며 핀잔을 주었다. 혼자서 무엇이든 해보고 싶어 하는 둘째의 성향상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꾸 철퍼덕 넘어지고 여기저기 부딪히는 아이를 그저 격려만 하며 바라보고 있기란, 여간 고역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혼자서 해보려는 아이의 속도가 내 성에 찰 리도 없었다. 첫째는 혼자 저만치 앞으로 갔다가 뒤로 돌아오기도 하고, 동생이 낑낑거리는 주변을 맴돌며 지루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그래도 다행히 크게 보채는 일 없이 동생을 기다려주어서 그것만으로도 고마웠다. 멀어지는 첫째를 바라보면서 어쩔 수 없이 둘째의 속도대로 걸었다. 앞서나간 첫째는 어느 순간 뒤를 돌더니 여전히 멀리 있는 우리를 확인하고는, 제 킥보드에 몸을 널브러뜨린 채 멍하게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첫째에게도 자꾸만 마음이 쓰였다.

“봄아, 이제 엄마가 끌어줄게. 넘어지면 위험하고 오빠도 계속 기다리잖아.”

“아니야. 그래도 내가 할 거야.”

사실 첫째는 한 번도 빨리 가자고 조르지 않았다. 지루해 보인 것도 내 느낌이었을 뿐, 짜증을 부리거나 기다리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았다. 답답함을 느낀 건, 오직 나였다. 생각해보면 약속 시간을 정해놓은 상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랜만에 아이들 산책이나 시켜주려고 나온 건데 아이의 속도를 따르는 게 당연했다. 그런데도 나는 목적지가 있는 이상 자꾸만 조바심이 났다. 다치지도 않은 아이가 다칠까봐 겁이 났다. 아이 대신 내가 킥보드를 달랑 들고서 앞서 걷고 싶었다. 그게 솔직한 마음이었다.

둘째의 고집을 꺾을 수도 없었거니와, 뭐든 혼자 해보겠다는 마음이 얼마나 기특한 마음인데 싶어서 끝까지 기다려주었다. 끝내 둘째는 스스로 킥보드를 탔다가 끌다가 하며 공원 입구까지 무사히 도착했다. 그제야 둘째는 “엄마, 끌어줘.”라며 킥보드에 두 발을 올려놓았다. 나는 둘째가 올라탄 킥보드를 잡고 신나게 공원 안 놀이터로 뛰어들어갔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햇살 좋은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았다.


아이를 키우며 ‘기다리는 일’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아이를 잉태한 이후로, 모든 순간은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아이를 만나 품에 안기까지 열 달을 기다려야 했고, 진통이 시작된 후에도 아이가 스스로 자궁문을 열고 나오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아이가 젖을 찾아 스스로 물 때까지 도와줄 수는 있었어도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눈을 맞추는 일, 방긋거리며 웃는 일, 누운 자세에서 몸을 돌려 뒤집는 일, 두 발에 힘을 주고 서고 걷고 달리는 일, 스스로 음식을 먹고 무언가를 마시는 일, 옹알이를 시작으로 단어에서 문장까지 말을 하는 일, 기저귀를 떼고 변기에 스스로 앉는 일, 무엇 하나도 기다림 없이 얻은 결과는 없다. 그 과정 과정에서 때론 조급하고, 때론 걱정스러운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다 지나갔고, 아이는 끝내 무엇이든 해냈다.

결국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손을 내민 일, 조바심에 종종거린 일은 모두 나의 문제였다. 나는 무엇이든 빨리 빨리 해내는 것이 마음 편하고, 가능하면 어떤 일이든 내 손을 거치는 것이 제일 믿음직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었으니 매순간 시험에 들 수밖에 없었다. 아이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시행착오가 있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기다림이 수반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믿고 기다리는 일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이를 키우는 일에서 엄마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것뿐이다. 엄마로서 믿어주고 그저 함께 그 시간을 보내주는 일, 그것뿐이다. 어쩌면 기다리는 일은, 오직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그래서 더 가치로운 일인지도 모른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기다리기 어려운 일들이 더 많이 생긴다. 아마 앞으로는 더욱 더 그럴 것이다. 빨리 해냈으면 싶고, 얼른 하고 말았으면 싶고. 그래서 대신해주고 싶고,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을 때가 수도 없이 많아지겠지. 그럴 때마다 자꾸 생각하고 되뇌어야겠다.

아이를 기다려주어야 한다고, 그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믿고 기다리는 일, 내가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 by 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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