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가 아이를 망치는 것은 아니다

TV가 아이를 망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아이는 15개월부터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영유아를 위한 영어 전집의 DVD였는데 하루 30분씩 틀어주었다. 아이가 20개월 쯤엔 IPTV의 어린이 앱을 통해 콩순이 율동동요를 오픈했다. 오전엔 영어 DVD 50분, 오후에는 콩순이 30분 이런 식으로 하루에 1시간 20분 정도 영상을 보여주었다. 두 돌이 되면서 유튜브를 오픈했다. 영어 동요나 애니메이션을 주로 틀어주었다. 다양한 학습 DVD와 유튜브를 섞어가며 보여주고 노출 시간은 지금까지 최대 2시간을 넘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내 아이의 영상시청 상황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사람에 따라 영상 노출이 매우 늦은 편이고 시청 시간이 매우 적다고 느낄 수도, 혹은 지나치게 빠르고 과도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유아기의 영상시청에 관한 논의는 대체로 ‘언제부터 얼만큼 씩 보여주어도 되는 지’의 틀에서 벗어나질 않는다. 하지만 나는 언제부터, 얼만큼 보여줘도 되는 지에 대한 정답을 고민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고민했던 것은 ‘현명하게 영상을 활용하는 방법’ 뿐이었다.

나름대로 고안해 본 현명하게 영상을 활용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1. 아이에게 영상 시청 말고도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2.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는 이유를 나 스스로 분명히 한다.
  3. 영상에 대한 통제권은 절대 아이에게 주지 않는다.
  4. 아이가 본 영상과 관련한 활동을 한다.

1. 아이에게 영상 시청 말고도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방법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왜 영상에 중독될까 생각해 보았다. ‘뇌를 정지시킨다’, ‘강렬한 자극에 익숙해져서 소소한 자극에 만족하지 못하게 된다’ 같은 이론들이 있지만 내 단순한 썰은 ‘TV보다 재밌는 게 없어서 TV만 본다’는 것이다. 나의 아이는 TV를 보다가도 “엄마랑 놀이방 가서 놀까?”라고 물어보면 “좋아요!” 하면서 기다렸다는 듯이 쇼파에서 내려온다. 아이는 장난감들을 활용해서 역할극놀이를 할 수 있다는 것을, 교구와 클레이로는 이것저것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김장매트 위에서 물감으로 저지레 할 수 있고 촉감놀이 재료는 다양하다는 것을, 책을 읽고 퍼즐을 맞추고 엄마와 요리를 하면서도 소소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시간을 보내는 가장 손쉬운 수단인 TV를 제시하기 전에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고, TV 보다 먼저 엄마와의 상호작용에서 얻어지는 행복감에 중독되게 만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것이 영상을 보여주면서도 영상에 집착하지 않는 아이를 만들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Key였다고 생각한다.

2.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는 이유를 나 스스로 분명히 한다.

내가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줄 때에는 네 가지 경우가 있다.

  1. 컨디션이 안 좋거나 내 손님이 와 있어서 아이와 놀아 주기 힘들 때
  2. 집안일을 해야 할 때
  3. 새벽에 이앓이로 깬 아이가 진정하지 못할 때
  4. 외국어에 노출시킬 때

결국 내가 아이와 놀아줄 수 없어서, 새벽에 아이가 큰 소리로 울면 내가 곤란해서, 내가 아이에게 외국어를 가르쳐 주고 싶어서 트는 것이다. 이렇게 영상을 틀어주는 이유가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임을 인지하고 나면 아이를 영상에 맡기는 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아이가 떼를 써서 보여준다면, 그건 내가 아이가 떼쓰는 것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심심해 보여서 보여준다면, 그건 내가 아이가 심심해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심심하지 않게 놀아 줄 의지가 나에게 없기 때문이다.

3. 영상에 대한 통제권은 절대 아이에게 주지 않는다.

“TV는 엄마가 보여주고 싶을 때만 보여주는 거야. 엄마가 끄고 싶으면 끄는 거야.”

아이에게 영상을 보여주기 시작할 때부터 항상 했던 말이다. 아이가 영상을 보고 싶다고 먼저 말 하면 절대 틀어주지 않았고, 아이는 볼 생각이 별로 없는 뜬금없는 순간에 엄마가 보여주고 싶으니깐 보여주겠다며 TV를 틀어주었다.

생활의 다른 부분, 예를 들면, 아이가 나의 화장품이나 조리도구를 가지고 놀고 싶어하면 통제하지 않고 흔쾌히 허용해 주는 편이지만 영상 시청에 관해서만큼은 아이에게 절대 통제권을 양보하지 않았다. 아이가 영상을 보고 싶다고 끄지 말라고 떼를 쓴 적도 물론 있었지만, 30분이고 1시간이고 울게 내버려 두었다. 이것만큼은 절대 엄마가 양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시켜주기 위함이었다. 요새도 아이가 가끔씩 더 보겠다며 떼 쓸 때가 있다. 하지만 떼는 오래가지 않는다. “떼 쓴다고 엄마가 더 보여준 적 있어?” 한 마디면 상황 종료이다.

4. 아이가 본 영상과 관련한 활동을 한다.

독후활동이라는 것이 있다.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책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그리기나 만들기, 책 속 등장인물처럼 해보기 등 추가적인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독서를 위한 독서가 아닌 정말 책에 담긴 이야기를 이해하고 느끼는 진정한 의미의 독서를 하게 된다.

나는 영상을 본 후에도 아이와 영상시청 후 활동을 한다. 영상에 나오는 캐릭터 피규어들로 역할극 놀이를 하기도 하고, 영상에서 콩순이가 이유식을 만들었으면 쌀이랑 물이랑 넣고 이유식 만드는 놀이를 하고, 유튜브 채널에서 제공하는 활동지를 다운받아 아이와 만들기를 하기도 한다.

정 할 게 없으면 영상에 나오는 캐릭터를 인쇄해서 코팅해주면 그것만으로도 아이는 인형이라고 좋아하며 데리고 한참을 논다. 단순히 영상시청으로만 끝내지 않고 본 내용을 놀이로 확장시키는 방법을 제시함으로써 아이가 영상으로 시간을 소진하는 것이 아니라 유익함을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 영상 시청 후 활동의 전제조건은 엄마가 아이가 보는 컨텐츠를 모두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유익한 컨텐츠를 골라서 아이와 함께 보는 것이 중요하다. 

유아기의 영상시청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찾아보진 않았지만 하나 눈에 들어오는 의견이 있었다. 유아기에 영상시청을 많이 한 아이들일수록 언어발달이 늦되고 공격성이 늘어나는 성향을 확인할 수는 있었지만 그것이 영상 그 자체 때문이라기 보다는 방치되어 부모와의 상호작용이 충분하지 못했음을 반영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의견이었다.

‘영상 때문에 아이 언어 발달이 저해되고 공격적이 된다’라는 말이 어쩌면 틀렸다는 것이다. 영상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엄마와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부족해서 말이 늦고 공격적이라는 게 훨씬 더 논리적이지 않은가?

나는 호르몬의 영향이나 스트레스로 감정이 힘든 날에는 아이와 간식을 먹으며 BTS 영상을 보기도 한다. 덕분에 아이는 전주를 1초만 들어도 BTS를 외칠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영상에 허용적인 입장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것은 영상을 보는 행위 자체가 아이에게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를 뽀로로에게 던져 놓고 널부러져 카톡 삼매경에 빠지는 부모가 아이에게 나쁘다는 것이다.

아이에 대한 사랑과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고민이 충분히 전제된다면 영상시청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래본다.

TV가 아이를 망치는 것은 아니다 by 하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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