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육을 언제부터 해도 되는 지 묻지 마세요

훈육 을 언제부터 해도 되는 지 묻지 마세요

한동안 부모들이 인터넷에서 자신의 아이를 가리켜

‘우리집 외계인’

이라고 칭하는 것이 유행이었다. 도통 이 지구별의 룰을 따르지 않는 것 같은 자유분방함과 엉뚱한 상상력으로 부모를 곤란하게 만드는 아이들을 위한 최선의 애칭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아이도 스스로를 외계인처럼 느끼고 있을 수도 있다. 어느 날 눈을 떠보니 지구라는 곳에 떨어진 자신을 발견했는데, 도무지 이 놈의 별에선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막막하고 외로운 외계인 말이다.

나는 그 당황한 외계인에게 이 지구별에서 살아갈 때 필요한 지식을 넣어주는 것이 ‘훈육’이라고 생각한다.


커뮤니티에는 매일 같이 ‘x살 아기, 훈육 필요할까요?’라고 묻는 익숙한 질문글 들이 반복되어 올라온다. 당연히 훈육은 필요하다. 흔히들 출산과 육아를 통해 건강하게 기능하는 사회구성원을 길러낸다고 말하지 않는가? 사회에서 그 구성원으로 잘 기능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갖춰야 하는 지식과 소양을 훈육을 통해 아이에게 알려주는 것이 당연히 필요하다.

그럼에도 훈육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이 흔한 배경을 감히 짐작해보건데, 사람들이 훈육을 혼내는 것이라고, 폭력적인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미 수없이 강조했듯이 ‘훈육’의 본질은 ‘혼내는 것’이 아니다. 그 행동이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고 옳게 행동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다.

가르칠 훈(訓)에 기를 육(育)을 쓰는 훈육이라는 한자어 어디도 혼낸다는 뜻은 들어가 있지 않다. ‘훈육은 x세부터~’ 하는 의견들이 존재하긴 한다. 그것은 절대 아이가 혼나는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시기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훈육이 가능한 연령이라 함은 아이가 부모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는 시기와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정 개월 수 이전엔 열심히 가르쳐도 당위성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훈육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굳이 헛수고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훈육을 통해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그건 쉬운 이야기이다. 아까 말했듯 이 사회에서 제대로 기능하며 살아가기 위한 도덕이나 관습, 문화적인 규율 같은 것이겠지.


어려운 것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이다.

 보통 훈육이 시작되는 3세~4세 시기는 아이가 평생동안 쓸 정서적 토양을 다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건강한 사회의 구성원이 되라고 하는 훈육으로 인해 아이가 건강하지 못한 정서를 가지게 된다면 모순적이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훈육을 고민하는 상황은 보통 부모가 아이 때문에 곤혹스럽거나, 성가신 상황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부모가 감정을 통제 못하고 실언하고 폭주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 실언과 폭주로 인해 후회할 만한 일이 벌어진 적이 있다. 어느 날, 아이가 하루 종일 말도 안 되는 떼를 쓰며 징징거리는 소리에 넌더리가 나서 결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고 말았는데 그 뒤로 아이가 계속해서 “내가 떼를 쓰면 우리집은 시끄러워져.”라고 말하는 것이다. 사실 소리를 지른 것은 아이 탓이 아니라 감정조절을 못한 나의 탓인데, 아이에게는 아이가 잘못해서 엄마가 소리지른 게 되어버렸다.

아이에게 떼를 쓰는 대신 불만족스러운 감정을 현명하게 해결하는 방법을 알려줬어야 하는데 그런 가르침은 커녕, 자신이 떼를 쓰면 엄마는 소리를 지른다는 끔찍한 인과관계를 머리속에 저장시켜주고 말았다. 아이가 혼자 얼마나 자책을 할까?


그런 경험을 교훈 삼아 나는 훈육 상황에 쓰이는 말과 감정을 조절하는 데에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다. 다음의 몇 가지 전제를 항상 기억하고 있으면 감정의 과잉이나 실언을 줄일 수 있다.

1. 아이는 나를 열 받게 하려고 그 행동을 한 것이 아니다.

아이가 손톱만한 작은 교구를 우르르 바닥에 쏟아버렸다. 아이가 나를 엿 먹이려는 것 같다는 의심이 잠시 들지만, 그냥 아이는 별 생각 없이 쏟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2. 아이는 그 행동을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전셋집 벽지에 아이가 보드마카로 야무지게 그림을 그려 놓았다. 아이는 이게 전셋집인지 자가인지도 모르고 왜 전셋집 벽지에는 더더욱 낙서를 해서는 안 되는 지 결코 이해할 수가 없다. 전셋집이라서 곤란한 건 그저 부모 사정이다.

3. 나는 10,000일 넘게 살았고 아이는 고작해야 1,000일 살았다.

아이가 30개월이 지났는데 숟가락질이 서툴러 밥을 먹고나면 옷이며 식탁이며 엉망이 되어버린다. 아이는 아직 1,000일 밖에 살지 않았고 숟가락을 쥐고 밥을 먹어 본 일은 100번도 되지 않을 것이다. 아이는 미숙할 수 밖에 없다. 내 기준에서 생각하지 말자.

4. 아이를 이 낯선 세상에 데려온 것은 나와 내 배우자이다.

아이는 아무 생각도 없이 부모의 의사에 의해 태어났다. 누군가 당신을 멋대로 오지로 끌고 가서 너는 왜 우리 부족처럼 행동하지 않냐고 닥달하고 비난하면 황당하지 않겠는가? 당신은 그 사람에게 살뜰한 보살핌과 부족의 문화와 규칙에 대한 친절하고 완벽한 안내를 바랄 것이다. 아이도 그렇다.

4. 비난은 비난만 남긴다.

비난은 보통 “왜”라는 의문사로 시작한다. ‘왜 이렇게 흘리고 먹어?”, “왜 이렇게 떼를 부려?”, ‘왜 이렇게 엉망진창을 만들었어?” 등등. 저 질문들은 어떠한 가르침도 주고 있지 않다. 그저 아이를 비난 받는 것이 익숙한 아이로 자라게 할 뿐이다.


훈육에 대한 방법론은 많다. 한 번에 하나씩만 가르쳐 주기, 최대한 짧고 간결하게 말하기, 단호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하기 등등. 하지만 어떠한 육아의 방법론에도 우선하는 것은 나와 내 아이의 마음이다. 훈육의 시기나 방법에 대하여 묻기 전에 나는 내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고 싶은 지, 왜 그걸 가르쳐 주고 싶은 지, 내 아이는 지금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 지 스스로 질문해 보기를 권한다. 내가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가치를 나의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정성껏 가르친다면 그게 바로 훈육의 정답일 것이기 때문이다.

훈육 을 언제부터 해도 되는 지 묻지 마세요 by 하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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