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강하다고 한다.
엄마가 되어보니 알겠다.엄마는 강한 사람이 아닌
엄마이기에 강해져야 하는 것이었고 강한 척 연기를 할 수 밖에 없는 역할이라는 것을.
▶엄마 마음을 담은 또 다른 감성 에세이가 궁금하다면?
어렸을 적 나에게 엄마는 슈퍼우먼과 같은 존재였다.
못 하는 것이 없었으며 먹고 싶은 음식이며
놀이터에서 놀다 찢어진 바지를 예쁘게 꼬매주며
언제나 무엇이든 뚝딱 해내는 엄마 는 어린 날의 나에게 크나큰 존재였다.

그런 나도 엄마와 같은 엄마가 되었다.
아이가 먹고 싶어하는 음식을 해주고
어려운 종이접기를 뚝딱 만들어주고
모르는 단어의 뜻을 알려주는.
그렇게 잘 해내고 있다고 믿고 있던 내가 무너지는 날이 있었다.
아이가 심한 코골이와 간헐적 수면무호흡증으로 인해
아데노이드 편도 절제술을 받던 날,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아이를 준비시키고
별 일 아니라는 듯 덤덤하게 병원에 들어섰다.
자신의 체구보다 3배는 큰 환자복으로 갈아입은 아이를 보니
벌써부터 마음이 찌릿했지만 아이의 긴장감을 풀어주고 싶었다.
환자복에 그려져있는 로켓과 행성들을 가리키며
“옷에 로켓이랑 토성이 그려져있지? 아주 잠깐 우주 여행을 떠나는거야.”
말하자 며칠 전 유치원에서 배웠던 우주를 여행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떴는지 아이는 씩- 웃음을 보였다.

앞 순서의 수술이 취소되는 바람에 수술 준비를 서둘렀다.
두번의 시도에도 혈관을 찾지못해 결국 수술방을 향했다.
아이가 아직 어려 보호자 1명이 마취까지 동행할 수 있었다.
“여기가 우주 여행을 떠나는 곳이야.
별들도 블랙홀도 목성도 토성도 모두 볼 수 있지. 재밌겠다!”
하고 말하자 내 얘기를 들은 의사분들도
아이가 긴장하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그렇게 수술대에 올라 마취가 되는 동안
수술대에서 아이가 떨어지지 않도록 온 몸을 벨트로 감았다.
우주 여행을 간다는 사실에 신이났는지
벨트가 감겨진 모습에도 아이는 싱글벙글이었다.
“잘 다녀와. 어디 다녀왔는지 엄마 꼭 알려줘.”
하며 마지막 말을 건네고 마취가 시작됬다.
약 냄새에 발버둥치다 이내 눈꺼풀이 스르르 감기는 아이를 확인하고
관계자를 뒤따라 수술실을 나오는 순간
왈칵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
내가 했던 그 모든 말들은 아이를 안심시키기 위한
내 서툰 연기였기에.
1시간의 시간이 지나고 회복실에 도착한
아이의 이름이 불리우자마자 달려갔다.
마취와 진통으로 인해 몸부림치면서도 눈으로는 계속해서 엄마를 찾고 있었다.
혈관을 찾기위해 손등과 발등 4군데 모두 바늘 자국에 멍이 들어있었고
발목에 꼽혀진 링거를 보니 마음이 쑤셔왔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갈라진 목소리로 아아아…만 작게 외쳐대는 모습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 같았지만 내가 울을 수는 없었다.
“이제 우주 여행 안가도 되. 다 끝났어. 잘했어 우리 딸.”
회복실에서 병실로 옮겼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이른 새벽부터 제대로 된 끼니도 먹지 못했지만
나의 배고픔과 피로함은 수술과 진통에 지칠대로 지쳐버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큼 마음이 아프거나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힘든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온 후 4~5일 동안은 새벽만 되면 찾아오는 진통에
아이는 울부짖으며 깨어났다.
목 넘김이 힘든 아이를 어루고 달래며 진통제를 겨우 먹이고
힘들게 잠이 든 아이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미안함과 안쓰러움에 결국 참아왔던 눈물이 배게를 적시고 말았다.
2주가 지나고 아이는 원래의 컨디션으로 회복되었다.
이제 나는 내 아이 앞에서 나는 한 없이 약한 사람일 뿐이라고,
강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저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어 아무렇지 않은 척, 강한 척
~척 연기하는 것 뿐이라고.

엄마가 강한 것이 아니라 사랑의 힘이
나를 더 단단하고 강인한 엄마로 만들어주는 것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비록 한 없이 약한 사람이더라도
내 아이에게만큼은 슈퍼우먼이 되어줄 것이다.
